Ⅰ. 서 론
수치심은 자신을 결함이 있고, 열등하고, 부족하고 전반적으로 실패자로 간주하는(Carona et al., 2017) 자기평가와 관련된 자기의식적 정서이다(Gilbert & Andrews, 1998: Tangney & Fischer, 1995). 통합적인 수치심 개념인 내면화된 수치심(Cook et al., 2001)은 한 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되어 특정한 상황에서 자주 수치심을 경험하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될 상황임에도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성격적 특성으로 존재하는 수치심이다(Gilbert & Irons, 2009;Tangney & Dearing, 2003).
정서 평가 이론에서는 수치심을 포함한 정서들이 특정한 평가 주제와 연합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스럽지 않아.’ 또는 ‘나는 가치가 없어.’와 같은 내적인 단순 진술문들이 사람들의 거부되거나 수치스러운 경험과 연합된 정서와 기억을 활성화한다는 것이다(Gilbert & Andrews, 1998). 그러나 많은 상황에서 수치심은 일차적으로 몸의 감각으로 경험된다(Thompson, 2019). 수치심을 느낄 때,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들을 동반한다는 것은 심리적인 기제가 수치심의 단일 원인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Schore(1998)는 애착의 기저를 이루는 생리심리학적 정서발달 과정이 수치심에 깊게 결합 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진화적,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는 대체로 수치심을 보편적이고 진화적인 적응으로 보았다(Elison, 2005;Gilbert & Andrews, 1998;Tomkins, 1963). 성인 대상의 수치심 연구에서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적 판단 없이도 자신 스스로 ‘자기’를 향하고 있으면서 무능하고 부적절하고 다른 사람과는 무엇인가가 꼭 들어맞지 않는 ‘다른 자기’를 경험하였는데, 수치심이 특정한 상황이나 시간, 실수나 사회적 규범의 위반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상관없이 항상 존재하는 존재적 수치심이라고 보았다(Keshmiri et al., 2020). 그러나, 이러한 진화적 수치심과 존재적 수치심의 관점은 인간을 수치심의 부정적인 영향을 거스를 수 없는 매우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개인적 요인에 국한할 수 있다.
반면에 Kohutian의 자기심리학적 접근에서는 자기의 심리 내적 결함에 의해 수치심이 내재화되어 있는 부모가 아동에게 비공감적 양육과 아동 욕구에 대한 무반응으로 아동의 변형적 내재화 과정에 심리적 구조 결함을 가져오는 것을 수치심 유발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았다(조미숙, 2009). 내적 수치심에 대한 종단 연구를 살펴보면, 아동기의 수치심 경험이 성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지속되어(Gilbert & Irons, 2009;Koestner et al., 1991;Zuroff et al., 1994) 대학생과 성인의 우울과 대인관계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송연주, 하문선, 2020;정은영, 신희천, 2014;조윤경, 현명호, 2020). 이와 같은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수치심의 안정성에 비추어 볼 때, 부모가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수치심을 내면화한 결과, 부적절한 양육을 통해 부모-자녀 관계에 장기간 영향을 미쳐 잘못된 수치심을 발달시킬 수 있다(Fonagy & Target, 1997;Gilbert & Andrews, 1998;Holmes & Slade, 2018;Kirby et al., 2019;Tracy et al., 2007).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에는 예민할 수 있으나, 자녀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심리적 증상과 정서 조절의 어려움을 경험하여 양육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김현주, 이정윤, 2011;이정숙, 함혜경, 2016), 자신의 모성과 부모 효능감, 가족 문제와 양육의 어려움에서도 수치심을 경험한다(Brown, 2020). 그러므로 한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 내에서의 모의 수치심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연구자들은 수치심을 열등감 정서라고 불렀으며, 열등감이 수치심의 핵심 요인이라고 보았다 (Cook, 1993;Gilbert, 1992a, 1992b;Gilbert & Andrews, 1998;Kaufman, 1989). 그런데 열등감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 아닌 자기와 타인의 존재, 부정적 평가라는 두 가지 요인을 선제조건으로 한다. 또한 Gilbert가 제안한 생리심리사회적 모델(Gilbert, 2002;Gilbert & Irons, 2009)에서는 수치심을 타인의 마음속에 긍정적인 정서를 활성화하려는 선천적 욕구를 바탕으로 두면서 자신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거나, 소속되지 못하고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손상에 취약한 내적 경고로 본다. 최근 수치심 연구자들은 수치심이 단순히 한 개인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고통만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가족 및 사회문화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거치며, 한 개인의 자기개념에 영향을 미치고, 내면화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현상이라고 보았다(홍지선, 김수임, 2017). 나아가 개인 내적인 맥락 속의 수치심조차도 사회 주체가 상호작용하며 사회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무시와 낙인, 배제를 통해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된 감정 경험의 발현(나혜준, 2022)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특히 현대의 무한 경쟁의 문화 속에서는 사회적인 평판과 수치심이 부모 양육 역할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이것은 수치심에 아동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 부모의 압력을 증대시키고, 심리적 통제와 역기능적 양육 방식의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Kirby et al., 2019). 이에 부모 자신을 포함한 가족 및 사회문화체계의 틀 내에서 수치심을 살펴보는 시각 또한 필요하다.
한편, 각 개인은 수치심을 느낄 때 각자 나름대로 대처 전략을 사용하는데, Gilbert는 수치심에 관한 대처 전략으로 네 가지를 제안하였다. 먼저, 보상의 대처전략은 열등한 위치에 놓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능력 있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다음은 은폐하기로 코미디언들이 그들의 연약함과 분노를 덮기 위해 수치스러운 유머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수치심을 피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대처 전략은 폭력으로, ‘네가 내게 수치심을 준다면 너를 때리겠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방법이다. 마지막 대처 전략은 투사로, 내 속에서 자신의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타인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방법이다(Gilbert, 2019). 또한 Nathanson(1992)은 수치심의 4가지 부적응적 대처 유형을 보여주는 수치심 나침반(The Compass of Shame)의 개념적 모델을 제안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내면화된 수치심에 따라 각기 적응적이거나 부적응적인 방향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부적응적이고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성을 나타내는 대처 유형에는 내부지향적 분노를 나타내는 자기 공격,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철회, 외부지향적 분노인 타인 공격과 수치심을 의식적으로 최소화해 인지하는 회피가 속한다. 이와 같이 각 개인과 상황에 따라 수치심에 대해 다양한 대처 전략을 선택할 때, 부적응적 대처 전략을 사용할 경우, 수치심 경험을 더 왜곡시키거나 병리적인 심리상태로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자녀관계에서 양육자인 모가 먼저 자신의 수치심 대처 기제를 인식하고 적응적인 대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상담 파트너로서의 모가 자녀의 수치심 경험에 대한 대처 방법을 학습하고 훈련할 수 있게 하는 잇점이 있으나, 국내에는 관련 연구가 거의 없어 모가 자신의 수치심과, 자녀 관계에서의 수치심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탐색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국내의 선행연구들은 아동·청소년의 수치심에 대한 환경적 요인으로서의 부모 요인을 주로 탐색해왔으나 부모의 수치심을 이해하려는 연구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인지, 정서적 발달이 가속화되어 부모-자녀 간 갈등이 심화할 수 있는 후기 아동기 자녀를 둔 모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요구된다. 이에 덧붙여 국내 연구자들은 면담을 통한 수치심의 질적연구의 필요성(강보운 외, 2010;조미숙, 2009;홍지선, 김수임, 2017)을 오랫동안 제기해왔음에도 수치심에 대한 질적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 연구는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의 상호주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구성주의적 근거 이론적 접근 방법과 포토보이스 기법으로 후기 아동기 자녀를 둔 어머니의 수치심 경험과 대처를 알아보고, 아동과 부모 상담 및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Ⅱ. 연구방법
1. 구성주의 근거이론
이 연구는 구성주의 근거이론으로 수행하였다. 구성주의 근거이론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복수의 인식론적 실재들을 인정하며, 연구자와 연구의 참여자가 공동으로 의미를 생성하고 해석한 구성물의 유용성을 바탕으로 연구의 엄격성을 검증하고자 하는 질적 연구방법론이다(박수정, 2015). 구성주의 근거 이론은 일상적 사건과 현상에 대해 면담을 통한 자료를 근거하여 열린 이론을 만드는 것을 중요한 맥락적 과정으로 여긴다(Charmaz, 2014). 이 연구는 추후 수치심에 대한 더 정교한 이론들을 위한 길을 열어두는 것으로 고정된 하나의 결말로서의 이론화 작업이 아닌 실체적인 중간 범위 이론이라는 점에서 유연한 구성주의 근거이론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2. 연구참여자
이 연구의 참여자는 경상북도 시·군에 거주하는 5, 6학년 아동을 둔 모 5명이 모집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여아의 부 1명에 대한 1차 예비 연구 결과, 부에 비해 모가 모집하기 수월하다는 현실적 이유에 덧붙여,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부에 비해 모가 자녀양육에 더 많이 관여하고 있어 모의 수치심을 알아보는 것이 부모교육 및 상담에 대한 시사점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아동의 정서적, 인지적 발달 수준과 부모와의 상호작용 시 원활한 의사 표현 능력을 고려하여 최소 초등학교 5학년 이상 아동을 둔 모로 한정하였다. 참여자들은 면담을 마치면서 연구주제에 관심이 있을 다른 학부모를 소개하여 자연스럽게 눈덩이 표집(snowball sampling)으로 연구참여자가 선정되었다. 참여 자들의 인구학적 특성으로는 평균 연령 만 42세로 나타났다. 연구참여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 정보 수집은 최소화하였다. 연구참여자에게는 장시간의 연구 참여로 인한 시간 할애에 대해 소정의 사례비를 제공하였다. 연구참여자는 아래 <표 1>과 같다.
3. 연구 절차
이 연구는 먼저 구성주의적 근거이론을 위한 3회의 1:1 반구조화 인터뷰 가이드를 준비하였다. 면담은 이론적 포화를 목표로 진행하였다. 마지막 면담 회차에서는 참여자들이 자신의 수치심에 관한 경험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연구 참여를 통한 변화와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구성주의적 관점을 실천하였다. 이후 면담 자료에 대한 코딩 분석 결과를 범주화하여 이론 생성하였다.
둘째, 포토보이스(Photovoice)는 사진과 같은 시각 이미지를 활용해서 개인이 해석하는 자기 자신, 사물, 사건과 세상을 이해하고, 이 사진을 통해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개인 및 집단의 의미 있는 경험에 목소리는 내게 하는 것이다(Wang & Burris, 1994). 참여적 실행 과정으로서의 포토보이스는 참여자의 자발적 참여와 불확실한 맥락적 해석에 대한 주의, 진행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적절성 검토와 공유의 3대 원칙이 중요하다(임윤서, 2023). 이 연구에서는 수치심 경험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따른 참여자 표집 대상이 결정되어 있고, 집중면담을 주된 방법으로 사용하여 포토보이스 설계 과정을 4단계로 단순화 하였다. 첫째, 포토보이스 방법 안내, 둘째, 수정하지 않은 원본 사진 촬영 및 내용 설명문 작성과 제출, 셋째, 사진 경험에 대한 개별 면담을 통한 자료수집, 넷째, 근거이론 코딩 분석을 활용하여 범주화한 후, 참여자의 목소리를 이론 생성에 통합하였다. 이 과정은 포토보이스 가이드를 작성하여 실행하였다.
4. 자료수집
이 연구의 자료수집을 위해 인터뷰 가이드를 활용한 반구조화된 면담과 면담 외 자료수집의 다각화를 위해 포토보이스 기법을 실시하였다. 면담으로는 참여자의 아동과의 관계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개방 질문으로 시작하여 수치심 경험을 심층 탐색하였다. 근거이론에서도 면접자료 외에 관찰이나 상징적 자료 등을 활용한 보다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아동의 경험을 탐색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가 필요하다 고 보았다(양홍식, 김현주, 2020). 포토보이스는 가이드에 따라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주제에 관련하여 떠오르는 심상을 상징하는 사진을 1장 찍고, 평균 1주일 후 문자와 카톡을 활용하여 경험 내용과 함께 제출한 후, 마지막 면담 시 참여자가 경험에 대해 진솔하게 표현하도록 자연스러운 질문들을 시도 하였다. 수집된 자료의 면담 전사 결과, 전사록 328쪽, 주 1회 면담 시간은 참여자 평균 57분으로, 평균 총면담 시간은 1인당 3회 약 2시간 50분 동안 실시하였다. 포토보이스는 4장이 수집되었다. 또한 연구자는 4권의 메모 노트와 연구 성찰일지 2권을 작성하였다.
5. 자료분석
1) 면담 코딩 분석
구성주의 근거이론은 연구자가 연구 과정과 결과를 독창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자료 분석 방식을 강조한다(김은미, 2021). 이에 따라 먼저, 이 연구의 면담 자료 분석은 구성주의 근거이론의 분석 방법인 초기코딩, 초점코딩, 이론적 코딩 단계를 바탕으로, 개념과 주제, 이론 3단계로 명명하여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마지막 3단계인 이론 생성에 근거하여 모의 수치심 경험과 대처 경험을 구성하고 핵심 범주인 중심 주제를 구성하였다.
2) 포토보이스 분석
포토보이스를 분석할 때는 연구참여자의 해석을 연구자의 해석과 동등하게 존중한다. 이는 참여자가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상징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을 바탕으로 구성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포토보이스의 맥락화와 주제화하기(Wang & Burris, 1997)가 분석 단계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어 근거 이론의 코딩 분석 방법이 좀 더 해석의 틀에 효과적일 수 있다(Latz, 2018). 이에 따라, 이 연구에서는 포토보이스의 분석 단계로 첫째, 참여자가 일상에서 경험한 수치심을 상기시키는 상징을 찍은 사진과 사진에 대한 경험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였다. 둘째, 연구자는 근거이론의 코딩 분석 방법으로 참여자의 포토보이스 내용과 유사한 수치심 경험 내용의 개념과 주제를 비교 분석한 후, 같은 주제와 이론 내용에 포토보이스를 배치하였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는 포토보이스에 대한 중심 주제를 부여하여 제목을 붙이고 그 경험 내용을 독자가 읽기 쉽게 간추려 인용하였다.
이상과 같이, 연구자는 질적연구방법에 따라 자료수집과 동시에 면담 전사록에 대한 초벌 초기코딩의 개념 분석을 병행하였다. 이후 모의 수치심 경험에 대한 전사록의 원자료와 메모로부터 개념과 주제들이 출현하도록 지속적인 비교를 하였고, 기존 이론들을 참고하여 세 단계를 오르내리며 이론 생성을 포함한 자료 분석을 수행하였다. 이에 따라 이 연구에서 사용한 구성주의 근거이론 자료 분석 과정을 아래 <그림 1>에 제시하였다.
6. 연구의 엄격성
연구자는 구성주의 근거이론의 평가 기준에 따라 이 연구의 엄격성과 신뢰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아동학 및 아동 상담 전문가 1인과 질적연구 전문가 1인 검토, 질적연구 모임의 박사 및 박사과정 대학원생 3인 간 협의와 아동 상담학 석사 1인 간 검토를 수행하였다. 수집된 자료들에 근거하여 전문가 및 동료 간 검토를 병행하여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하고 논리적 연결성에 주의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신빙성을 충족하였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구체적인 수치심 경험의 부정적인 영향을 확인하고 자녀를 둔 학부모 입장의 동료 간 검토로 공감 정도에서 긍정적인 피드백과, 상담 현장의 실천적 개입에 대한 제언으로 공명성과 유용성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7. 연구 윤리
연구자는 소속 기관의 생명윤리위원회 승인(IRB 승인번호: 1040191-202206-HR-005-01)과 연구자 참여동의서를 받았다. 또한 부정적인 수치심 경험의 재현에 의한 정서적 불안정을 고려하여 긍정적인 자기상과 강점도 함께 이야기하도록 하여 발생할 수 있는 불안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Ⅲ. 연구결과
자료의 분석 결과, 아동과의 관계에서의 수치심을 포함한 모의 수치심 경험은 개념 214개, 주제 46 개와 이론 13개를 구성하였다. 수치심 대처 경험은, 개념 164개, 주제 38개와 이론 15개를 생성하였다. 여기에 포토보이스 분석 결과 4개를 포함하여 구성하였다. 이론에 근거하여 모의 수치심 경험을 종합한 결과 중심 주제는 ‘본래 존엄의 힘 자각하기’로 구성하였고, 그 내용을 서술하였다.
1. 개념과 주제에 근거한 부모의 수치심 경험 내용과 이론
1) 소통의 부재로 소외되기
대부분의 모들은 아동이 들은 체를 하지 않고 대답을 안 할 때 자신의 존재를 무시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모도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아동들은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냥 가버리거나, 모가 관심을 가지면 알 필요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모들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인생에서 사라지는 투명 인간 같은 존재의 소외감과 공허함을 느꼈다. 연구자는 자신의 지시에 무반응인 아동에 대한 모 2의 포토보이스 주제를 ‘분노의 김밥’으로 구성하였다.
“집이 크지도 않거든요? 얘가 화장실에 갔다가 나랑 스쳐 지나갈 때 불러도, 다섯 번을 불러도 대답을 안 해요. TV를 봐도 뒤로 다 보이잖아요, 얘가 뭐 하는지. 관심이 없는 건지, 진짜 안 보이는 건지.” (모 2)
2) 무너지는 부모 권위
모들은 아동의 잦은 짜증을 내는 행동과 모 탓으로 비난을 받을 때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고 수치심을 느꼈다. 아동들은 사소한 일에서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고 쿵쿵거리거나 문을 꽝 닫으며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하였다. 혼낼 때 감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안 되어 철없는 엄마, 한심한 엄마로 자책하였다.
“선생님께 ‘우리 엄마 밥 먹다가 늦게 왔어요.’, 편하게 먹고 온 것도 아니고 1분간 너무 배가 고프니까 부랴부랴 막 끌어넣다시피 먹고 차타고 이러고 갔는데, 그때는 되게 난처하더라고요. 늦게 오면서 거기다가 밥까지 먹고 오느라,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가족끼리만 말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를 좀 지켜줬으면 싶은데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수치심 그런 거를 느끼는 편이에요.” (모 4)
3) 존중과 지지의 부족
대부분의 모들은 자신의 직설적으로 거르지 않은 말 던지기 방식에 의해 아동들이 수치심을 느낄 것 이라고 생각했다. 모들은 대개 모욕주기, 무안 주기, 면박하기, 타박하기 등 실수나 결함을 꾸짖거나 창피를 주는 방식으로 아동과 대화하였다. 또한 아동의 반복되는 실수나 불순종으로 인해 아동을 불신하 였다. 아동의 출생순위에 따라 자신의 친밀감이나 관심, 수행에 대한 기대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인내심이 필요한 건데, 해야 하는 것도 알겠고, 아이한테 그러지 말아야 할 것도 알겠고, 머리로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들어가 있는데 가슴은 짜증부터 올라와요. 그러면 애가 제 눈치를 봐요. ‘엄마 왜 그래? 나 때문에 그래?’, 근데 입으로는 ‘너 때문이 아니야.’. 이 말의 에너지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아, 나 때문에 그렇구나-.’ 이렇게 확신을 하더라고요.” (모 5)
4) 사회적 지위를 위한 능력 부족
모들은 자신의 수치심 경험으로 직장 업무나 학업 능력에서 남들과 비교하여 뒤처짐에 창피스러움을 느꼈다. 10년 가까이 육아로 아이들과 유아 언어만 쓰다가 재취업했을 때 잘하던 말도 생각대로 안 나오고, 강의 능력을 갖춰 업무를 업그레이드하는 동료를 보며 기간제 보조조차도 안 되는 자신의 역량에 자존감이 떨어졌다. 불안정한 단기 계약직으로 아동들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부담감과, 정규직과의 차이가 큰 임금, 복지혜택과 경력자에 대한 부러움, 인생을 잘못 산 것 같은 좌절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은행 계약직에 들어갔을 때 처음 느꼈어요. 멘붕이 많이 왔어요. 아무래도 페이(급여)가 제일 다운 시키죠. 뭐, 월급부터 시작해서 이게 갭 차이가 많이 나니까, 내가 잘못 살았나? 뭐지? 내 존재감이 이정도 밖에 안되나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가 되게 작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정규직이) 부러운 거 예요. 부러운 거 자체가 쪼금 그렇잖아요.” (모 3)
5) 만연한 외모 차별
모들은 아동과 아동 친구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전해 듣고 수치심을 느꼈다. 반면에 아동이 많이 먹을 때 칼로리 폭발이라고 장난삼아 놀리거나 딸의 자존감을 염려해서 아이에게 권하여 같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자신도 외모 차별을 아동들에게도 전해 주며 스스로에게도 외모 차별을 하였다. 모 5는 외모 수치심으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기 어려워 했고 이에 대한 타인 평가의 불안을 나타내어 포토보이스를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으로 구성하였다.
“제가 원래는 되게 날씬하기도 했고 나름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키 큰 사람이 살이 찌면 덩치가 정~말 크게 느껴지거든요. 전 엄청나게 수치스러워요, 살이 너~무 쪄서. 거울을 보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만날 때는 저 사람 나를 보면 놀랄 텐데, 항상 그 생각을 해요. 막, 정말 숨 쉬는 것 자체도 창피스러워요.” (모 5)
6) 외모 지위를 추구함
모들은 대체로 예쁘고 날씬하지 못한 몸매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졌다. 관리를 통해 매력 있는 몸매를 가지지 않으면 세상 레벨에서 뒤처지는 것 같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외모도 하나의 사회적 능력이며, 어느 정도 노력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능력으로 여겼다.
“학교 갈 때 왜 엄마가 꾸미고 가겠어요? 내 아이를 부각하기 위해서, 엄마 외모부터 좀 갖춰서 차려입고 면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들을 해요. 그래야 내 애가 무시 받지 않잖아요. 자신이 있으면 무조건 직접 학교에 가서 대면해요. 언젠가부터 자꾸 살이 더 찌고 있으니까 학교가기 싫은 거예요. 어느 순간, 선생님에게 그냥 전화로 돌리게 되더라고요.” (부 5)
7) 수용하기 어려운 신체 자기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모 참여자들은 양방향의 극단적인 식습관으로 인한 자기혐오를 경험했다. 모 2는 현재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덜 먹게 되어 신경이 예민해지고 자신도 조절이 안 되면서 아동이 간식을 많이 먹으면 화가 났다. 모 4와 5는 시댁에 대해 원망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먹는 것으로 자신을 학대하였다. 나이 제한에 걸려 직장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걱정되었고, 학업의 어려움이 나이 탓인 것 같기도 하였다.
“신랑한테 자꾸 늙는 것 같다고 하면 그냥 받아들이라고 해요. 저는, 나 못 받아들여! 절대 나 늙을 수 없어! (웃음) 그런 거에 집착하게 돼요. 2, 30대에는 쥐뿔 잘난 것 없어도 내가 제일 잘하는 줄 알았거든요?” (모 2)
8) 위축되는 자기
모 참여자들은 흠이 있는 자기를 수용하기 어려웠고 쪼그라드는 존재감의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면 자존심 때문에 듣기 싫어 예민하게 반응하고 주변 상황에 자주 휘둘렸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 수치심이 느껴졌을 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엮여서 분란의 씨앗이 되었다는 점에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적을 받는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맞다고 한 것들이 부끄러웠죠.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덜 부끄러웠을 텐데.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항변하는 거예요. 누구한테라도 동의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이런 것도 있지 않나? 하면서.” (모 1)
9) 부모 지위의 대물림
참여자들은 대부분 친정 부모의 자식을 위한 노고와 희생적인 헌신에 감사했으나, 존경스럽지만 미워할 수도 없고 닮고 싶지도 않은 부모님으로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대물림을 끊고자 하였다. 부모로 부터 정서적으로도 지지받지 못했던 성장기를 회상한 모들은 친정 부모와 수다를 떨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하지만 속 깊은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기댈 수 없는 사이였다. 심리적인 어려움이나 육체적인 장애가 있는 친정 부모에 대한 주변의 낙인으로 모들은 대체로 자신의 부모에 대한 수치심의 멍에를 짊어졌다. 부모의 보호를 받는 평범한 가족이 가장 큰 소원이었지만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어려웠던 시절에는 그것을 꿈꾸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친정 아빠를 닮은 모 2는 친정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안 좋은 눈빛을 보내는 외가 식구들에게 마치 죄인 같이 주눅이 들었다. 모 5는 정작 자신의 아동에게는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지지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반복되는 가족 역사를 겪었다.
“아빠는 장애가 있었어도 우리한테는 정말 잘해주시고 마을에서 최고로 멋진 아빠였어요. 아빠는 늘 ‘사람들이 날 업신여겨, 업신여겨.’, 그러면 어린 마음에 아빠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어른들에게 욕하면서 많이 싸웠어요. 우리 아빠한테 왜 그러느냐고. 심지어 고모가 엄마를 욕하면 사위가 둘이나 있는 엄마를 어떻게 욕하냐고 미친 거 아니냐면서. 그러다 엄마한테 어른에게 함부로 한다고 따귀를 맞았어요.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는 ‘네가 그렇게 해줘서 고마웠어’, 그러시더라고요. 엄마한테 맞았어도 화가 안 났어요. 제가 창피하니까 더 짜증 내고 소리 질렀죠.” (모 5)
10) 시어머니 권력 아래 엎드리기
참여자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주로 시댁 시어머니의 집안일까지 힘들게 도우면서도 보상 없는 노력과 지속적인 정서적 학대로 깊은 굴욕감과 수치심, 우울을 경험했다. 모 5는 시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생신상을 차려드리고 싶어 공들여 음식을 해서 차렸다. 시모는 밥이 맛있어야지 이런 것 다 필요 없다며 음식을 발로 찼다. 전공을 살려 미싱 부업을 하던 참여자에게 시모는 집안을 수치스럽게 한다며 직업 능력을 무시하였다. 모 4는 출근 전 밭일, 퇴근 후 밭일하고 씻고 나오는데 밥상도 안 차린다고 욕을 먹었다. 게다가 시모는 나가서 못된 것만 배워온다고 자주 모욕을 주었다. 이에 따라 포토보이스를 ‘이 빠진 접시 같은 나’로 구성하였다.
“좋은 장난감은 사지도 못했어요. 여유가 없으니까 딸랑이 정도만 사지. 그렇게 나중에 어머니 빚을 다 갚았는데 내가 별로 한 게 없다고. 이제는 빚도 다 갚았으니 나가라는데 저희는 돈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가족끼리 니꺼 내꺼가 어딨냐 하면서 제 것은 시어머니가 잘도 쓰시고는. 억울하고, 헛일 했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아요. 밤에 잠도 못 자고 계속 어머니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모 4)
11) 가족이면서 가족 아닌 며느리 지위
시모와 남편은 시댁이 한 가족임을 늘 강조하였지만 모들은 정작 친정집처럼 편안하지 못하고 지속 적인 괴롭힘으로 남보다 못한 숨 막히는 시댁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시댁에 가면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참여자가 그렇게 행동하면 가정교육 못 받았다는 소리 듣는다는 말을 시모에게서 자주 들었다. 모들은 시댁에서 불평등한 출가외인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가장 참기 힘든 것 중 하나는 시댁 가족 같은 남편의 무관심과 시어머니 편들기였다. 시댁에 잘하기를 원한 건 효자인 남편이 가장 심했다.
“신랑이 ‘아버님 병원 가시는 날이네.’ 하면, 제가 연차 쓰면서 갔다 왔어요. 근데 우리 신랑은 친정 엄마, 아빠 모시고 한 번도 병원엘 가지 않거든요. 장인 장모는 남처럼 대하면서 너희 어머니 며느리 노릇만 하라는 거냐고 따졌어요. 명절 당일 되면 나는 친정엘 못 가는 데 아가씨들은 계속 오잖 아요. 음식 좀 내오라 하면서 가라는 소리를 안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가야 하나?’ 이러는데 가지 말라는 소리로 들리잖아요. 시댁만 챙기다가 이제 친정 부모님 나이드는 모습 보니까 죄책감이 들 어요. 저는 친정에 두 남매인데 제가 못 챙겨드리는 거예요. 이해해 주시겠지 하고는. (잠시 침묵)” (모 3)
12) 전통 속에 숨겨진 차별
대부분의 모들은 갈등의 원인을 며느리 탓으로 돌리는 시댁의 적대적인 언행에 긴 세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문제의 근원으로 세뇌당했다고 생각했다. 대체로 모들은 장기간 시모와 시댁의 불평등한 차별과 심리적 지배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자신을 잘못된 존재로 부정 평가하며 자기의 손상을 경험했다. 모 3은 결혼 후 10년간 계속 유산을 하였고 며느리 도리를 못 했다고 생각하고, 결혼 후에는 질타로 채찍질을 당한 수치심에 기가 죽어 살았다. 모 4는 친정을 다녀올 때마다 시모가 자기 항아리의 된장이 줄었다거나 반찬통, 살림들이 없어졌다며 참여자가 빼돌린 것처럼 도둑 취급을 당하여 창피스러웠다.
“우리나라는 왜 그럴까요? 죄지어서 며느리가 된 게 아닌데, 진짜 행동들을 보면 마치 ‘너는 우리 집에 들어 온 죄인이야. 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넌 죄인이야!’ (크게 숨을 내쉬며) 정말 시댁 에서 느꼈던 그만큼의 수치심을 어디 가서 또 느낄까요? (더 이상) 느낄 수 없어요, 그거는.” (모 5)
13) 차별의 시선이 내 시선 되기
모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며 타인의 평판과 험담, 놀림을 염려하였다. 모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함’을 자존감의 근원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모범적이거나 이상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평범함의 사회적 승인 기준에 못 미치는 자기나 아이, 친정 부모와 시부모를 볼 때 모들은 수치심을 경험하였다. 모 5는 가끔 엉뚱한 반응을 하기 때문에 삼차원으로 보이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 괴로웠고,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장애가 있는 친정 부모가 부끄러웠다.
“내가 어떠냐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행동하는 데 꽤 남을 신경 썼던 것 같거든요. 남들 시선이라든지, 험담이라든지. 에이씨, 그 사람한테 내가 그렇게 보이면 안 되는데 이런.” (모 4)
이와 같이, 참여자들은 유아기부터 원가족 부모로부터의 세대를 이은 외모와 정신적, 신체적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낙인으로 인한 대물림과 시댁에서의 시어머니 권력에 의한 관계적 수치심, 사회경제적 지위와 능력에 대한 수치심 등의 상황적인 조건으로 다양한 유형의 수치심을 내면화하여 경험하고 있었다. 이로 인한 위축과 자기비난, 불안, 우울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세상을 살아나가는 힘을 얻는 데 낮은 자존감을 경험하였다. 결과적으로 아동에게도 자신의 불안과 수치심을 전이하는 부정적인 양 육행동으로 아동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상호작용 경험을 하였다.
2. 개념과 주제에 근거한 부모의 수치심 대처 경험 내용과 이론
1) 부모 권위 세우기
대부분의 모는 반복되는 아동들의 행동에 대해 잔소리로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간섭하였다. 많은 경우 게임을 계속하거나 핸드폰을 오래 사용하는 것 등 부모가 고쳐야 한다고 제한한 행동을 아동이 반복해서 순종하지 않을 때 잔소리와 비난을 하였다. 모 자신의 수치심이나 굴욕감이 유발되는 행동을 아동이 하는 경우, 폭언을 하며 부모 권위로 누르기도 했다.
“쟤가 사춘기잖아요. 말이 안 되는 데서 분위기가 싸해져요. 압축팩에 정리하다가 인형이 몇 개 빠져나온 거예요. 그걸 또 넣자니 그래서 앞집 아기 갖다주자 그랬더니 갑자기, 삐졌어요. 평소 같으면 그럴 일이 아닌데 왜 물어보지도 않고 주냐면서 방문 닫고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웃음) 이건 말이 안 된다. 6살짜리도 아니고 아닌 건 아닌 줄 알아야지, 그건 아니잖아.” (모 1)
2) 위로하기
모들은 아동이 수치심을 겪을 때 적절하게 반응하는 방법을 몰라 부모로서 느끼게 되는 수치심에 대한 대처로 자녀를 안심시키는 방법으로 아동을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언제든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가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모들은 아동의 수치심 완화를 위해 치킨을 먹게 해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아동이 좋아하는 물건 쇼핑과 컴퓨터 사용을 허락하며 기분 전환을 통해 회복하게 하였다.
“아이가 수치심을 알려주면 좋죠. 친정엄마는 제가 뭔가 필요해도 별 반응이 없었어요. 저는 애가 살이 불룩 튀어나와서 이게 콤플렉스라고 하면 솔직하게 좀 살이 나왔다고 해요. ‘좀 그렇긴 한데 괜찮아. 영 안되면 수술하면 되지 뭐. 걱정하지 마. 엄마 돈 벌어서 수술해 줄게.” (모 2)
3) 소극적인 함께 맞서기
대체로 모들은 아동이 또래 관계에서 수치심을 느낀 경우, 직접 개입보다 아동이 대응할 수 있도록 말하는 기술을 제공하려고 했다. 따지고 싶을 때 따지라고 하기, 언니가 대신 단톡방 대화에 끼어들어 막아주게 하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말할 것을 알려주거나 카톡에 쓰게 하기,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받아칠 말을 집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보내기도 했다.
“카톡 방에 들어가 보니까 애한테 험담한 친구의 동생이 분명 후배인데도 우리 애한테 함부로 말을 해요. 그런데도 애가 그걸 그냥 ‘아니야, 아니야.’ 이 정도로만 하지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말을 못하더라고요. 제가 화가 나서 ‘00아, 언니 초대해!’ 그렇게 언니가 들어가 있으니까 조용해져서 그러고 말았거든요. 이럴 때 언니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모 4)
4) 덮고 물러서기
따돌림 사건을 경험한 아동에 대해 모들은 큰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몸살을 하며 복수심을 눌러야 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친구들이 자신과 안 놀아줄 때의 창피스러움, 분노, 억울함의 복합적인 감정이 다시 떠올라 아동의 고통을 함께 느꼈지만 가해 아동의 부모에게 항의하거나 학교폭력위원회에 강경하게 대처하지 않고 참거나 덮고 가는 것을 선택했다.
“(한숨) 아침에 혼자 학교 가는 모습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그냥 참았다? 참았다는 표현은 좀 다른 것 같긴 한데 어쨌든 그게 정답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쪽 엄마에게) ‘왜 자식 이렇게 키워? 이건 아니잖아.’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너도 당해봐라 이렇게 생각도 했는데, 다 자기 자식이 먼저잖아요. 그래서 악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러면 또 내 자식한테 돌아오는 거고. 인과응보라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일어난 일에 너도 당해봐, 이 마음은 갖지 말자.” (모 5)
5) 고립을 선택하기
모들은 독박 육아와 시댁 관계에서의 굴욕감과 수치심으로 인한 우울로 상당한 고통을 받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무기력감을 느꼈다. 시모로 인해 죽을 생각도 많이 했지만 결국 아이들 때문에 죽지도 못 하고,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신의 방치된 아동들에게 충분히 곁을 못 내어주고 부모에게 맞추고 살아야 하는 삶이 고달팠다. 할 말을 못하고 화병으로 마음 문을 걸어 닫고 대화하기를 거부하였다. 시댁에서의 차별 대우를 받는 긴 기간 동안 친정 부모나 가족, 친구, 후배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내 얼굴에 침 뱉기로 낯 깎이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을 알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되게 위축이 되더라고요. 뭔가 자신감도 없고. 계속 쪼그라드는 것 같았어요. 애한테 하는 말이라곤 ‘밥 먹자, 아유 잘 먹네, 자자.’, 이러다가 점점 말수도 줄어가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만나도 ‘안녕하세요’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 할 말이 없어져요. 제가 진짜 생을 마감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애를 보면 눈물이 막 쏟아지고, 너 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이러면서. 그러다 또 애가 태어나서 육아에만 정신 팔다 보니 세월이 한 십 년 가버렸어요.” (모 4)
6) 시댁 지배에 맞서 평등한 관계 맺기
모 4는 십 년이 지나자 갑자기 어느 날 자신이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자각이 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변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서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 3은 엄마와 딸 같은 좋은 시모-며느리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현실에서는 딸은 딸, 며느리는 며느리로 친해질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닫고 이상적인 시어머니상, 이상적인 며느리상을 내려놓았다. 모들은 새로운 자각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거나, 어른이라고 함부로 못 하던 말을 참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였다. 모 4는 시모와 두 번 정도 대판 싸우고는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시원함을 맛보았다.
“어머니가 언제 갈 거냐고 물으면 처음에는 애아빠한테 물어보고요, 또는 상황 보고 간다며 말을 못 했어요. 이제는 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친정집으로 가요. 한 달에 한 번 있는 모임 시간 때문에 시누들이 있는데도 설거지를 안 하고 나왔거든요. 예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어요. 옛날 같으면 시누들 다 챙겨주고 나와야 하고 아무 말 못 하고 또 폭발할 것 같았는데... 날 버릇없다고 보는 걸 이제 상관하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하는 게 맞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 3)
7) 시댁과의 경계 짓기
시댁에 잘하려고 노력을 했으나 며느리 역할에 거는 기대는 끝이 없었다. 대부분의 모들이 선택한 방법으로는 시댁에 예전만큼 애쓰지 않는 것과 방문하는 횟수를 줄이고 분리된 공간에서 지내며 시모와의 마주침을 줄이기도 했다. 모들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시댁과 거리두기를 하며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시모와 시누의 횡포에 완전히 관계를 끊는 것을 택하고 그것만이 내가 살 길이라고 믿기도 했다.
“마음이 돌아서서 어머니하고 밥 먹고 싶고 시댁에 가고 싶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 달라고 했어요. 남편이 가끔 떠봐요, 어머니가 같이 밥 먹자고 한다고. 그러면 대답을 안 해요. 제사에서 만나면 예의가 아닌 걸 알지만 어머니 보면 인사가 안 나와요. 앞에 이렇게 앉아 중얼거리시면 제가 고개를 그냥 돌려요. 한 공간에 있어도 한마디 말도 안 나와요. 가실 때도 가세요 소리가 안 나와요. 어머니가 저한테 점점 투명 인간이 되어가거든요. 근데 저는 그게 좋아요. 점점 마음이 편해지고.” (모 5)
8) 자존의 침해에 마주 서기
모들은 대개 자신의 잘못이 아닌 지적이나 비난을 받을 경우 부당하게 공격받았다고 생각하면 굴욕감을 크게 느꼈다. 모 5는 따돌림을 한 가해 아동 엄마가 자신의 딸이 스스로 같이 놀지 않기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말해 괘씸했다. 모 2는 직장 동료가 지나갈 때 인사를 안 했다고 지적을 받아 자신에게 텃세를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고 오해받은 것에 대해 수치심과 화가 치밀었다. 상대방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참여자도 짜증을 내거나 화내는 맞대응 방식으로 대처 하였다. 또한 모들은 갈등 상황에서 충분히 잘못이 없음을 설명했는데도 상대방이 물러서지 않으면 짚고 넘어가기 위해 끝까지 따졌다.
“귀에는 귀, 눈에는 눈이지! 나도 더이상 못 참는다 이러면서. (웃음) 어머님이 바깥에 나가서 세숫대야 걷어차고 이러면 쨍그랑 소리나고 하잖아요. 쿵쾅거리며 다니시다가 상자를 발로 차거나 설거지 하면 제 그릇이 다 깨질 정도로 와장창, 와장창 소리가 나요. 어머님이 문을 쾅 닫으면 이제 저도 문을 쾅 닫아요.” (모 4)
9) 갈등을 비켜 가기
수치심에 굴욕감이 동반될 때 모들은 분노를 자주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분을 풀기 위해 참여자들은 소소한 저항으로 소심하게 복수하거나 관계를 무시하고 끊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제가 똑 부러지게 No를 잘 못해요. 제가 봤을 때 그게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그때는 그래그래 하다가 나중에 내가 왜 그랬지? 그때 이렇게 해야 했는데, 아 또 내가 그냥 넘어갔네 하면서 좀 자책하게 돼요. 남 탓보다 내 탓을 좀 하기도 해요. 무슨 상황이 생기면 일단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먼저 생각해요. 만약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할 말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아이들한테는 권하고 싶지 않아요.” (모 3)
10) 기분전환으로 수치심 벗어나기
모들은 수치심 완화를 위한 방법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수다를 떨거나 지인과 만날 약속을 잡아서 적극적으로 기분을 풀려고도 하였다.
“주말 지나고 오늘까지도 계속 그 영향이 남아있어요. 그래서 뭔가 다른 일을 만들고 싶어요. 친구를 만난다거나 매운 음식을 먹는다거나. 오늘 낮에도 누군가를 만나고, 내일도 약속을 잡고 하는 식으로. 저는 어딘가에 말을 해야 좀 풀려요.” (모 2)
11) 수치심 통제를 통한 불안 막기
모들은 주로 자신의 부정적 정서와 조우하는데 불편함을 느껴 통제하려 했다. 자신을 오픈하고 싶지 않은데 갑자기 오픈되는 상황에서도 수치심이 느껴졌다. 모 5는 아동이 힘들다는 말을 할 때 괴로워서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회피하기도 했다. 대부분 자신의 아동이 생각할 것 같은 부모상image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였다. 주로 잔소리를 많이 하거나 아동에 대한 간섭이 많은 부모, 통제를 많이 하는 독재자, 아이의 마음을 못 읽어주는 부족한 엄마로 볼 것 같았다. 또한 살아오면서 자신의 수치심 경험으로 인해 아동이 잘 못 될까봐 좀 더 많은 간섭을 하게 되어 세대를 잇는 예기불안을 경험하였다.
“남편과 싸울 때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대신 남편이 말을 안 하니까 저도 안 하게 돼요. 저는 친구들하고 싸우는 것도 싫었고 그냥 사람들과 부딪치는 게 싫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어해요. 어릴 때 친정 부모님이 싸우는 게 불안했기도 하고. 제 성향이 좀 그런 것 같아요. 상처받는 게 싫어서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가는 것 같아요. (잠시 침묵) 내가 못 견딘 건가?” (모 3)
12) 완벽한 능력으로 수치심 막아서기
모 참여자들은 수치심으로 인한 불안을 막기 위해서 실수하지 않고 더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고 아동들도 그렇게 할 것을 암암리에 요구하였다. 모 5는 구화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청각장애인 아빠처럼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은 뭐든지 잘해야 하고, 아이도 부족한 사람이면 안 되기 때문에 정리 정돈이나 학업을 더 철저하게 하길 바랐다. 모 2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적받는 것이 싫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안 되었다. 만약 일이나 사람 관계에서 실수나 실패를 하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기본적인 것에 안주하였다. 모 3은 인정받기 위해 시댁에 잘하고 싶었고, 잘해야 하고, 그래도 우리 며느리가 제일 낫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들들 볶는 ‘착한 며느리 병’을 만들었다. 모 3은 이러한 능력과 완벽주의적인 수치심으로 인한 자기 비난과 사회적 힘을 위한 반복적인 경쟁을 나타내어 포토보이스 주제를 ‘쌓이는 일은 내 능력 탓’으로 구성하였다.
“공부를 잘해주면 좋은데요, 꿈이 뭐냐고 아이에게 물으니까 처음에는 의사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음, 전교 1등 해도 갈똥 말똥이야.’ 하니까 ‘아-’ 이러더라고요. 그리고는 선생님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가서 반에서 1등 하면 선생님 할 수 있어.’ 이랬어요. 그랬더니 또 ‘아-.’ 하네요.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냐고요. 그런데 제가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는데 애가 혼자 못 할 것 같다고 불안해서 학원에 가고 싶다는 거예요. 내 친구들은 아이 동심을 너무 파괴하는 거 아니냐고 해요.” (모 3)
13) 본래 존엄의 힘 자각하기
참여자들은 가족적, 사회적 승인을 통한 지위 세우기로 수치심에서 회복되기도 하였다. 모 2는 아동이 자신의 말을 잘 따라줄 때 부모나 사회로부터 받지 못한 인정이 성취되고 자존감이 올라가며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모 3은 전공 분야 정규직으로 취직하고 난 뒤 완전히 올인하여 열정을 불사르며 6개월 만에 사원에서 대리로 특별 승진을 하였다. 대부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 휘둘렸던 삶을 돌아보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의 시선으로,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감정이 가장 소중하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저는 웬만한 거는 거의 못 하는 게 없어서 제가 뭘 잘못 한다거나 마음에 안 든다거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떤 상황이든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늦게 자거나, 더 일찍 일어나서라도 해요.” (모 4)
14) 수치심을 이겨내는 모성
참여자들은 강하고 아이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나가고 싶은 자기상과 부모상을 보여 주었다. 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닌,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우울감에 빠져 있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당당한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상적인 부모상으로, 평범하지만 아동들을 사랑하고, 같이 대화하며 수치심을 해결해 갈 수 있는 친구 같은 지지적인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
“이런 부모가 ‘안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런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있어요. 인생을 좀 더 살아 봤으니까 이 방향이 맞다고 조언도 좀 해 줄 수 있고, 리드해(이끌어) 주고 싶어요. 아이한테 그늘이 되어주고 기댈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은데 돈을 벌려면 내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게 항상 짐이에요. 엄마 잔소리가 밉고 싫어도 엄마가 다 해주려고 노력한다는 걸 알아줄 것 같거든요?” (모 2)
15) 지지적인 관계를 통한 치유
모 1과 2는 친정 부모로부터의 애착, 돌봄과 지지의 결핍에서 결혼 후 가족이 생기며 그 자리를 대신 해주는 남편의 지지로 인해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다. 모들은 수치심이나 굴욕감으로 인해 불편한 감정이 들 때는 주로 소수의 친한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 자매들과의 교류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을 수정하기도 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며 수치심의 압력을 풀기도 했다.
“시어머니로부터 질타를 받아도 보통 고부간에 원래 다 그런 거 아닌가? 하고 살았어요. 직장에서는 제가 오늘도 시댁에 간다고 그러면 ‘왜 또 가요? 그러면 안 돼요. 해줘도 표 안 납니다. 그냥 몸 챙기세요.’ 이러세요. 친구들도 ‘잘해주고 욕먹는 게 참 신기하다, 너처럼 요즘 그렇게 잘하는 사람 없는데 칭찬 못 듣는 것 보면 더 신기하다’면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하지 말라고 해요. 그동안 친구들 과도 단절되어 살면서 주위 이야기를 못 들어보다 보니까 더 착한 며느리 병에서 못 헤어났던 거예요.” (모 3)
이와 같이 모의 아동 수치심에 대한 대처와 자신의 수치심에 대한 대처 경험 내용을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모는 아동의 실수나 실패로 인한 좌절감과 수치심의 호소를 회피하거나 물러서며, 부모 권위를 내세우거나 대체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대처 방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참여자들은 자신의 수치심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부적응적인 대처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친구의 지지나 배우자의 지지는 참여자들의 수치심에 긍정적인 보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아가 참여자들은 수치심에 의한 고통 속에 수동적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자신이 본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필요하다면 주변 관계를 단절하면서까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 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자존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Ⅳ. 논의 및 결론
결론적으로 모의 수치심 경험의 중심 주제는 ‘본래 존엄의 힘 자각하기’로 구성되었다. 모 참여자들은 상당한 수준의 내면화된 수치심 경험을 시작으로 자신의 자존을 스스로 되찾기 위한 긴 여정을 경험 하였다. 모의 수치심 경험으로는 첫째, 내면화된 수치심은 이른 시기에 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기의 원 가족으로 인한 미해결된 수치심은 모의 불안과 우울, 자녀와 부부관계 및 대인관계의 어려움, 사회경제적 직업 능력에서의 지속적인 좌절 경험을 하게 했다. 이러한 어려웠던 가정환경 속에서의 친정 부모의 양육방식은, 특히 모에 의한 정서적 무시와 같은 아동기 사회적 거부 기억이 성인기 만성 적 수치심과 연합된다(Terrizzi & Shook, 2020)는 점에서 모의 실존적 수치심에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내면화된 수치심이 모로부터 아동에게 세대 전이되거나 부모-자녀 간 수치심의 상호 교환과 학습 가능성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모가 경험한 내면화된 수치심의 유형으로는, 자신의 신체 일부 특정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신체 추형을 포함한 외모 수치심, 정신적 역량 면에서의 부족을 나타내는 능력 수치심, 실패나 실수에 의한 완벽주의적 수치심,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자기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자기 반영적 수치심, 부모와 가족, 대인관계에서의 관계적 수치심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심 경험은 사람들이 신체 영역, 역량과 능력 영역, 그리고 관계 영역의 세 영역에서 수치심을 경험한다(Kaufman, 1989)는 연구 결과를 대체적으로 지지하였다.
셋째, 관계적 수치심은 타인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한 염려의 외적 수치심과 자신이 나 가족 구성원이 가족에게 수치심을 불러온다는 자각에 관련된 가족적 수치심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최현수, 신희천, 2016). 이 연구에서 어머니들은 한국적인 관계적 수치심의 한 형태로 자신의 아동의 사회불안, 또래 관계 문제, 대인관계에서의 타인의 부정적 평가 염려를 포함하여 원 가족, 결혼한 자신의 가족, 시댁과 외가 친·인척을 아우르는 광의의 친족 수치심(relative shame)을 경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친족 수치심은 자기와 관계된 다른 친족들의 불평등한 권력에 의한 부당한 차별과 정서적 무관심 및 존재적 무시를 당한 자기를 부정적으로 느끼고 내면화한 수치심이다. 참여자들은 특히 결혼 후 시어머니의 권력 및 역할 구조적 갈등(이혜자, 2003)과 심리적 지배로 인해, 자신의 가족적 지위와 자기 가치에 대한 존재 인정 욕구가 처절하게 좌절되는 굴욕감과 수치심을 경험하였다. 또한 가장으로서의 부모 역할 수행이 어려운 친정 부모의 가족적, 사회적 지위와 신체적 장애,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스스로에 대한 자기 낙인은 모 참여자들이 내면화된 수치심을 각인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는 유럽-미국계 문화는 개인주의적 사회로, 사람들이 주로 스스로 저지른 도덕적 수치심 상황에 대해 묘사하지만, 동아시아인 상당수가 가족 구성원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따른 결과로 수치 심을 경험한다는 수치심의 문화적 모델(Keshmiri et al., 2020;Wong & Tsai, 2007)을 지지하는 결과이다.
넷째, 참여자들은 수치심과 관련이 깊은 자기 비난과 우울 경험을 하였다. 자기 비난은 내적 수치심 과정을 만들고, 또한 내적 수치심과 자기 비난은 상당히 융합적으로 우울과 연합되어 있다(정은영, 신 희천, 2014). 또한 수치심 사고의 빈도가 우울과 반추에 관련이 있고, 열등감과 수치심이 우울 반추와 유의미한 관련이 있다(Cheung et al., 2004;Gilbert, 2005;Gilbert & Irons, 2009)는 선행연구들과 유사한 부정적인 경험을 보여주었다.
모의 수치심 대처 경험으로는, 자신의 수치심 수용에 곤란을 겪으며 고립을 선택하기와 같은 물러나기로 자기 공격과 회피, 철회의 대처를 하였다. 반면에 따지거나 싸우고 맞대응하기와 같은 타인 공격적인 대처도 하였다. 이것은 Gilbert(2019), Kaufman(2004), Nathanson(1992) 등이 제시한 수치심에 대한 부정적 대처 유형들을 대부분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 생리심리사회적인 수치심의 보편성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들은 단지 수치심에 부적응적이고 수동적으로 희생당하는 존재만은 아니었다. 원가족으로 인한 결핍된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세대를 이은 대물림 끊어내기를 시도하였다. 자기 존재가 잘못이라는 부적절감을 불러일으키는 차별과 낙인의 타인 시선에서, 당당하고 지지적인 모성의 의지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한 인간으로서 존엄한 나의 시선으로 살기를 노력했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모의 수치심의 저변에 가족과 사회문화 속에 만연하는 차별과 낙인의 시선으로 인한 존엄의 상실이 내면화된 수치심의 근본적인 배경 조건으로 기능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비만 낙인과 차별(김민주, 2016), 정신장애인과 신체적 장애인의 사회적 낙인 비교(박평화, 2012) 연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가 경험한 이러한 가족 및 사회문화적 수치심은 모의 사회적 지위 경쟁, 불안과 우울의 정서적 어려움, 대인관계, 자녀 양육 모두에 역기능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따라서 부모 상담 및 교육에서 부모를 부정적인 양육 요인의 존재로 축소하거나 소외시키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부모가 자신의 수치심을 인식하고 수용하게 하여 심리적 어려움을 완화하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존엄한 존재로 대할 수 있게 격려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부모가 아동의 수치심을 민감하게 알아채고 아동의 부정적인 정서를 수용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기와 타인에 대해 공격하거나 철회와 회피의 부적응적인 대처 방식이 아닌, 자기 주장적이고 자기 수용적인 적응적 대처 전략을 수립하도록 예방적 개입이 필요하다. 특히 자기-자비는 개인이 수용되고 보살핌과 관심을 받는다는 경험을 하게 하므로 생리학적 효과가 있으며, 자비가 수치심의 가장 강력한 해독제가 될 수 있다(Gilbert, 2011;Kirby et al., 2019)는 점에서 수치심의 중재 방안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 상호호혜적 관계를 구축하여 정신건강 문제에 대처해 가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국내의 모 수치심 경험과 대처에 관한 근거이론 연구로 수치심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제공하고 경험적 자료를 구성한 점에 의의가 있다. 이 연구의 제언으로, 내면화된 수치심은 사회적 위계인 지위(status) 추구에 대한 승인 동기의 좌절이 핵심적으로 작용하여 이로 인한 완벽주의적 수치심과 불안 강화를 예상할 수 있어, 완벽주의와 수치심, 불안의 관계에 관한 추후 연구와 추출된 경험적 이론에 대한 검증과 보완을 위한 추가적인 양적 연구들이 필요하다.
끝으로 수치심은 긍정적인 자기감과 양극에서 대립하는 반의어가 아니라 하나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부모가 자녀와의 관계에서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 노력과 가족과 사회체계 내의 내면화된 수치심의 완화 노력으로 자존에 대한 개인의 원초적 욕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