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들은 대체로 생물학적 배경과 양육환경으로 구분 할 수 있다. 다양한 이유로 친부모와 분리되어 시설에서 성장한 아동들은 입소배경과 연령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친부모와 분리되어 시설보호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자신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친부모와 관계유지 또는 친부모 찾기라는 추가적인 발달과업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생애초기 자신을 양육하였던 친부모, 조부모, 친인척, 위탁부모 등 주양육자와의 분리 경험과 집단생활로 인해 애착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추가적인 발달과업과 생애 초기 애착형성의 어려움은 양육시설 퇴소 후 심리⋅정서적 안정, 이성교제 등 사회적 관계 형성, 경제적 자립, 결혼과 자녀 양육 등 전반적인 성인기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설보호를 경험한 아동들이 경험할 수 있는 어려움들은 유사한 반면에 퇴소한 성인들의 삶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시설보호에 대한 차별이 사회 곳곳에 존재하여서, 취업하기도 어렵고, 결혼하기도 쉽지 않다’는 비관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당사자(연합뉴스, 2023. 5. 5)의 의견이 있다. 실제로 시설퇴소 성인들은 친부모 찾기 등 정체성 형성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거나, 다시 만난 원가족의 경제적 문제와 정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거나, 가정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결혼을 못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부부와 자녀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이혼과 같은 가족해체를 선택하거나, 외로움과 불안감으로 인해 쉽게 주변 사람들을 의지하다가 폭력이나, 사기 피해 등을 당하는 등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존재한다(변미희, 최운선, 2022). 반면에 ‘자립준비청년들은 사회에 바르게 뿌리 내리기 위해 성실히 생활하고 있다. 그 윗세대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국민일보, 2024. 1 .23)는 희망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당사자도 있고, 기업을 운영하며 시설 퇴소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당사자도 존재한다(중앙일보, 2023. 6. 21).
그렇다면 시설보호 후 퇴소한 성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서 생물학적 배경과 시설보호라는 양육환경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므로, 시설보호 전, 시설보호 중, 시설보호 이후의 원가족 경험과 퇴소 이후 이성교제, 결혼, 자녀 양육 등 새로운 가족관계 형성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으로 인해 미국, 호주, 영국 등에서는 가정외보호를 받기 이전의 원가정은 가정외보호 종료 후 퇴소 청소년의 자립에 있어서 중요한 지지체계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퇴소 청소년의 긍정적인 사회적 자립과 적응을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퇴소 청소년의 원가족이 이들의 자립과 적응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연구가 2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활발히 수행되어 왔다(김수정 외, 2017). 국내에서는 보호종료 청소년의 자립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가족관계를 구체적으로 다룬 연구는 소수에 불과하다(권지성, 2007;권지성, 정선욱, 2009;김수정 외, 2017;신혜숙, 2016;유영림 외, 2015;황수연, 2017). 이에 본 연구는 20대~ 50대 아동양육시설 퇴소 성인의 원가족 경험, 이성교제와 결혼, 자녀 양육 등을 연구하여, 원가족과 새로운 가족 형성과 유지와 관련하여 필요한 지원과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Ⅱ. 선행연구
1. 양육시설 퇴소 성인의 원가족 경험
양육시설 퇴소 성인의 원가족 경험을 다룬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김수정 등(2017)은 가정외보호 퇴소 청소년의 원가족과의 관계 경험을 ‘애증의 외줄타기’로 정의하면서, 원가족을 가족이라고 분명히 인식한 경우, 원가족과 타인의 경계가 불명확한 경우, 타인을 원가족이라고 생각하거나 원가족을 완전히 잊고 싶어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고 보고하였다. 우선 빈곤이나 이혼 등 문제로 부모와 분리된 경우, 가정외보호 중에 부모와 다시 재회하였고, 퇴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거주지 제공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심각한 아동학대나 부의 사망 등으로 부모와 분리된 경우에는 가정외보호를 시작하면서 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자신을 학대한 부모를 지금까지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원가족과 타인의 경계가 불명확한 경우, 가족을 떠올렸을 때 시설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지만, 그래도 부모나 형제에게 무언가를 편하게 부탁할 수 있고 부담감 및 의무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외보호 퇴소 후 원가족과의 재회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다수의 해외 선행연구들에 의해 보고되고 있지만(Biehal et al., 1995;Cantos & Gries, 1996;Dixon & Stein, 2005;O'Donnell, 2001), 퇴소 후 원가족으로 복귀하거나 확대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경우는 실제로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국내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호가 종료된 아동의 48.6%는 부모가 ‘있다’고 응답하였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현재 부모와의 동거 여부’를 조사한 결과, 해당 아동의 89.1%는 ‘함께 살고 있지 않다’, 10.9%만이 ‘함께 살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향후 부모와의 동거 희망 여부를 조사한 결과, 47.5%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 15.9%는 ‘함께 살고 싶다’고 응답 하였다. 더 나아가 현재 부모가 있는 보호종료아동들의 부모와의 만남 정도는 ‘만나지 않는다’가 22.9%로 가장 많았으며, ‘1년에 1번 미만 만남’이 11.5%, ‘1년에 1~2번 만남’이 16.0%로, 절반에 가까운 조사 대상자들이 부모와 거의 접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이상정 외, 2020).
한편 기아 또는 미아 등의 사유로 입소하게 되어 원가족을 전혀 알 수 없던 시설출신 퇴소자들은 시설이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원가족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권지성, 2007). 하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다가 다시 가족을 만났을 때 된 심정은 낯설게 느껴질 만큼 ‘서먹서먹하고 무덤덤’했다고 한다. 또한 일부 친생부모들은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너무 어렵게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삶에 끼어드는 것이 오히려 미안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렇게 버려짐의 트라우마를 갖고 시설에서 퇴소한 경우, 원가족을 만났지만 원가족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경우는 매우 드물고 버려짐의 재경험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있어서 원가족과의 재회는 생의 과업이자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근원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달성되었을 때 오히려 가족에 대한 배신감으로 더 큰 좌절과 낭패감, 낯설음, 경제적 부담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황수연, 2017;유영림 외, 2015).
아동양육시설 생활경험자들의 외상 후 성장 과정을 다룬 신혜숙(2016)의 연구에서도 원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는 절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으며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잊고 싶은 기억이라고 응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은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면 미웠던 부모가 다시 그리워지며, 감정의 요동침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타인은 용서하지만 부모는 용서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며, 어떻게 자식을 버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잊어버리고 외면하고 싶으나 여전히 퇴소 후 현실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가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부모가 미우면서도 그리워하는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과거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이제는 과거를 충분히 이해할만한 나이가 되었고,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이해를 통해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부모를 돌볼 여건을 만들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통해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일임을 깨닫고 부모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하였으며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을 버린 가족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2. 양육시설 퇴소 성인의 결혼 및 자녀양육 경험
선행연구에 따르면 양육시설을 퇴소한 성인의 경우, 이성교제와 가족을 구성함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권지성, 2007;김수정 외, 2017).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하거나 결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혼에 대한 두려움은 원가족 부모를 닮아 자녀에게 똑같은 상처를 줄까봐, 자신이 부모역할을 배우지 못해서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없어서, 상대방의 부모가 자신들의 상황을 알고 결혼을 반대할 것 같아서, 자식 들에게까지 불행한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양육시설 퇴소 여성들은 퇴소 후 부닥친 외로움과 현실문제에 대한 도피처로 결혼을 생각하게 되며, 결혼이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설출신이라는 이유로 결혼하고 싶었던 남자와 결혼할 수 없게 되면서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연애 과정이나 결혼을 앞두고 상대방과 상대방의 가족에게 시설출신임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이런 부담 때문에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응답하였다. 과거를 다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그런 면에서는 서로 다 아는 사이인 퇴소생끼리의 만남과 결혼이 편할 수 있다. 교제와 결혼에 대한 부담으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신의 부모와 같은 삶을 살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결혼을 가로막기도 한다. 다른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끝까지 책임지면서 살고 싶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걱정된다. 자신의 부모와는 다르게 살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또한 교제과정에서 시설생활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결혼을 할 때도 시설 생활은 넘어야 할 큰 산으로 다가왔다(권지성, 정선욱, 2009).
반대로 이성교제와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성친구와의 관계에서 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을 받으며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여자친구의 존재가 자립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노력하게 하는 자극이 되었으며, 자신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고, 울어주던 여자친구로 인해 사랑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사람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김수정 외, 2017).
아동양육시설에서 퇴소한 청소년들의 퇴소 이후 생활을 탐색한 권지성(2007)의 연구에서는 결혼을 한 퇴소생들 대부분이 일반가정 출신의 이성과 결혼하여 살고 있었고, 일부는 퇴소생들끼리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같은 시설 출신의 퇴소생과 결혼을 하는 이유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동일하였는 데, 모두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배경과 살아온 과정을 ‘정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애를 할 때나 결혼해서도 더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는 반면에,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결혼할만한 대상이 마땅치 않거나 마음에는 들더라도 결혼대상자로는 꺼려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시설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측면들에 대해서는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다. 시설에서 같이 자란 사람들은 시설의 추억을 공유할 수도 있고, 특별한 감정들을 이해해 줄 수 있고, 동병상련으로 보듬어 줄 수도 있다. 명절에도 같은 입장이니 허전함도 덜 느끼고 눈치를 볼 것도 없으며, 둘다 원가족이 부재하면 함께 시설에 가서 인사하고 다른 퇴소생들과 어울려 지내다 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설퇴소 성인들은 부모 양방 또는 일방의 부정행위, 일탈을 보고 자라며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도 자녀를 시설에 의뢰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등이 작용하여 자녀출산을 기피하거나 자녀양육과 부모역할에 대해 두려움과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모델링이 없었기에 자녀를 키우면서 어떤 모습의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자신이 아이에게 어떤 엄마⋅아빠가 되어야 하는지, 스스로도 부모역할을 보고 자란 것이 없기에 알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자라면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지 못했기에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아이가 그렇게 느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황수연, 2017). 실제로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자녀들도 경험하게 될까봐 노심초사 하였으며, 이러한 유전을 끊어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모두 어렵게 가정의 해체로 인해 다시 일군 가정이 깨질까봐 걱정하였으며, 결혼을 한 경우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신혜숙, 2016). 이들에게 있어서 아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대신 치유할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야만 하는 대상이다. 자녀는 자기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고,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기초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퇴소 후 삶의 목표가 직업이나 사회적 성공이 아닌 평범하고도 화목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특히, 여성 참여자의 경우 아이를 출산한 후에는 모성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했고,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수용과 기획 전략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하였다(황수연, 2017).
Ⅲ. 연구방법
1. 질적 사례 연구
아동양육시설에서 성장하고 퇴소한 성인들의 원가족, 결혼 및 자녀 양육 관련 경험에 관한 본 연구는 ‘질적 사례연구’ 접근을 활용하였다. 본 연구가 활용한 질적 사례연구 방법은 경계를 가진 하나의 사례 혹은 여러 사례에 대한 철저하고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조흥식 외역, 2015), 사례별 분석과 사례 간 분석을 통해 사례들에 관한 폭넓은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 참여자들의 시설 입소 배경, 시설 생활, 퇴소 후 삶은 매우 다양하므로, 각 사례별로 깊이 있는 분석을 하였으며, 사례 간 분석을 통해 시설보호 경험이 전 생애에 걸쳐 결혼과 자녀 양육과 관련한 공통적 이슈와 맥락을 살펴보았다.
2. 연구 참여자
본 연구의 연구 참여자는 성별, 연령, 학력, 직업, 입소배경과 연령, 결혼에 대한 인식과 결혼 여부 등에서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다음 <표 1>과 같다. 먼저 본 연구 참여자의 성별은 여성 4명과 남성 5명 총 9명이고, 연령대는 20대~50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두 번째로 학력은 대졸 이상이 5명, 대학 중퇴 및 고졸 이하가 4명이며, 직업은 사무직, 전문직. 생산관리직, 자영업, 아르바이트, 무직 등 다양하다. 세 번째로 결혼 상태는 결혼계획이 있는 미혼, 결혼계획이 없는 미혼, 사실혼 후 별거, 위장결혼 후 이혼, 기혼 등 다양하다. 네 번째로 건강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지만, 우울증과 불안 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입소연령은 출생 직후에서 15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으며, 영유아기에 입소된 경우가 많았다. 입소배경은 부모의 이혼, 사망, 빈곤, 기아로 다양하며, 원가족과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거나 특정 가족구성원과만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연고가 없는 경우, 친부모를 못 찾았거나 찾지 않고 있었다.
3. 자료수집과 자료분석
본 연구에서 사용한 주된 자료수집방법은 심층면접이었고, 심층면접은 2022년 10월부터 11월까지 2개월간 진행되었다. 양육시설을 퇴소한 당사자 단체의 회원과 회원들의 친구, 선후배들에게 홍보하여, 연구 참여자를 모집하였으며, 면접 시작 전에 본 연구의 목적과 면접 내용을 설명한 후 참여자들 로부터 서면으로 동의를 받았다. 심층면접은 1~2회 대면 또는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으며, 1회당 2시간 내외로 소요되었다. 심층면접에서 연구자들은 시설 퇴소 성인의 생애 가운데 맥락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되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말해주세요’를 처음에 질문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받고 나서 대체로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어 주었으며, 연구자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충분히 듣고 나서 궁금하거나 더 듣고 싶은 대목에 대해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다시 질문하였다. 참여자 삶의 경험에 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본 연구의 주제인 원가족 경험, 친부모 및 가족 찾기, 이성교제와 결혼, 자녀 출산과 양육에 대해 질문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모든 심층면접은 녹음하였으며, 녹음된 파일은 모두 녹취록의 형태로 전사되었으며, 연구자들은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공유하여 검토하였다. 자료 분석은 사례별 분석과 사례 간 분석을 하였고, 사례별 분석에서는 각 사례들을 순서대로 제시하면서 이슈들을 찾아서 제시하였으며, 사례 간 분석은 모든 사례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발견하게 된 주제들을 제시하였다. 자료 분석 시에 연구자들은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서로의 분석결과를 검토하고 피드백 하였으며, 연구결과를 함께 구성하였다.
4. 윤리적 고려
먼저 질적 연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이슈를 방지하기 위하여, 연구자들은 연구 참여자에게 본 연구의 목적, 내용, 자료수집 방법, 활용방안, 개인정보와 면접 내용의 비밀보장, 자발적 참여를 위한 사전 동의, 연구 참여에 대한 보상, 연구 종료 후 수집된 자료의 폐기 처분 등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제공하고, 충분히 설명하였다.
두 번째로 심층면접 진행 전에 연구 참여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심리적으로 불편감을 느낄 수가 있다는 점을 안내하였다. 만일 면접 진행 중에 참여자가 심리⋅정서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휴식 시간을 갖거나 추가 면접으로 진행해도 되며, 심층 면접을 아예 거부할 수 있고, 심층 면접을 거부할 경우 면접내용은 연구에 사용되지 않음을 안내하였다.
Ⅳ. 연구결과
1. 사례별 분석결과
1) 사례 1번
부모의 이혼 후에 여러 지역을 이동하는 친부의 직업적 특성과 질병으로 인해 초등학교 5학년에 시설에 입소하여 고등학교 졸업 후 퇴소하였다. 시설 생활에서 본인이 선배가 되었을 때 강압적이고, 위계적인 선후배 관계가 아니라 상호 지지적인 선후배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여, 시설의 분위기를 많이 변화시켰고, 시설 생활에서 많은 아동들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입소 후에도 친부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였고, 친부가 재혼한 후에는 계모와도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였다. 현재 친부는 사망하였지만, 계모와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친모와는 연락이 안 된다. 대학 졸업 후 전공 교수님의 추천으로 전공 관련 분야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고, 정부지원 전셋집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정서적⋅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과 자금이 여유로워지면 자신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사례 1을 통해 비록 원가정이 해체되었지만 입소 기간에 정기적으로 친부 집을 방문하고, 재혼한 친부, 계모와 정서적 유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례1이 강압적이고 위계적인 시설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정서적 지지체계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례1은 대학진학, 취업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 정부지원의 활용 등을 통해 정서적⋅경제적 자립을 실현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사례 2번
친모가 홀로 연구 참여자를 양육하던 중 경제적 어려움과 정서적인 불안정으로 친모는 정신병원으로, 사례 2는 4~5세경에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고, 현재 친모를 찾고 싶은 마음이 없다. 시설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해당 시설에서 최초로 4년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 재학 시에는 정부지원 주거, 기초생활수급비, 장학금,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하였으며, 결혼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결혼식을 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다. 혼인신고를 하면 자립준비청 년에게 지원되는 것들을 포기하여야 하므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의 소득이 낮은 편이라서 자녀 출산 후에도 미혼모가정 지원 제도가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자녀를 자신의 가족관계에 올리고, 혼인신고를 계속 미루었다. 이후 생활태도와 관련하여 남편과의 갈등이 자주 발생하자, 자녀를 남편 가족관계등록부로 이동시키고, 헤어져서 현재는 취업하여, 혼자 거주하고 있다. 자녀는 남편과 친할머니가 양육하고 있는데, 자녀와 정기적인 면접교섭과 양육참여보다는 자녀가 성장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한 부모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자신과 자녀가 미래에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현재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며, 돈을 모우고 있다고 하였다.
사례 2는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여, 시설 생활에서 열심히 공부하였고, 현재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적 안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결혼과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서, 가족관계 특히 부모자녀 관계를 친밀하게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보다는 경제적 지원을 더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다.
3) 사례 3번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가 장애가 있어서 4세에 시설에 입소하였고, 누나와 형도 각각 다른 시설 에 입소하였다가 형이 생활하는 시설이 폐원되면서, 중학교 때 형이 사례 3의 시설로 전원 되어 함께 성장하였다. 공부를 매우 잘했던 형이 오면서, 시설의 분위기가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사례 3은 초등학교 6학년 동아리에서 배웠던 마술에 흥미를 느껴서 마술사의 꿈을 키우며 관련 대학으로 진학하였고 졸업 후에도 마술사로 활동하였다. 마술사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자립지원금 등 물질을 투자하며 열심히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였는데, 이때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상담해 줄 멘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였다. 다행히 마술사로 소득이 늘어가기 시작했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갑자기 실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시설출신이라서 비교적 쉽게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로 선정되었고, 직업훈련을 통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친형은 시설퇴소 후 명문대에 진학하였지만, 도박과 사기 사건에 연루 되면서 현재 연락은 되지 않고 있으며,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비용 중 일부를 누나와 함께 부담하면서, 연락하고 지낸다.
사례 3은 시설에서 성장할 때 공부를 잘했던 친형의 도움과 마술사에 대한 꿈이 있어서 관련 대학진 학과 취업을 통해 마술로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술사의 특성상 코로나19로 인해 실직하면서 좌절을 겪었으나, 시설 출신이므로 국민기초생활 수급자 선정과 정부지원 주거, 직업훈련 등에 수월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지원이 큰 도움이 되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 후에 자립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현재 누나와 함께 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4) 사례 4번
사례 4는 출생 직후 시설 앞에서 포대기에 싸여진 채로 발견되어 입소하였으며, 중학교 졸업 직후 시설 내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퇴소 하였다. 퇴소 후 중국집 배달, 공장 일, 일용직 등의 일을 했는데, 3~4 개월 일하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쉬었다가 다시 일을 구하는 생활을 반복하였다. 30대 중반에 경제적인 목적으로 중국동포와 위장결혼도 했었고, 범죄 유혹도 많이 있었지만, 범죄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집 근처 교회 여목사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발마사지 기술을 배우게 되어서, 발마사지사로 일 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실직하게 되었고, 최근에 여자목사님이 돌아가시면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우울증과 오십견 등의 질병으로 인해 주민센터에 여러 번 요청하여 최근에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되어 정부지원 주거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반찬과 정서 지원 등은 당사자 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사례 4는 중학교 졸업 후 시설에서 중도 퇴소 후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하고, 위장결혼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수급권자에서 벗어나 경제활동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자살 충동을 자주 느끼는 정신과적인 어려움도 있어서, 자립이 어려운 상황이다.
5) 사례 5번
사례 5는 부의 가정폭력으로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면서 만 3세에 시설에 맡겨지게 되었다. 중2 때 운동하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으며, 시설 이모(보육사)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지만 ‘자기 몸 지키라고 운동시키는데 그것 하나 못 지키기고 당하기만 한다’며 오히려 나무랐다고 한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면서 여러 번 자해를 시도했으며, 입퇴원을 반복하자 시설에서는 감당이 안 된다는 이유로 중3 때 시설퇴소를 강요하였다. 병원에서 6개월 치료를 받고 청소년 쉼터를 가게 되었으나 ‘감옥같은’ 시설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모님이 원래 살던 집에서 현재 혼자 살고 있다. 장애인과 수급자로 선정되어 정부에서 지원이 나오고 있지만, 통장은 아빠가 관리하고 있으며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조금씩 보내준다. 성폭력 가해자가 교도소에서 언제 나올지 몰라 무섭고 불안하면 자해를 하게 되며, 이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부모님이 법정에서 이혼할 때 오빠와 언니, 그리고 자신을 당연히 아빠에게 맡기고 떠난 엄마에 대해 지금도 분한 감정을 갖고 있다. 언니는 할머니가 데려가고, 아빠와 오빠가 함께 살면서 어린 자신을 혼자 시설에 맡긴 가족이 원망스럽다. 현재 가족과는 1년에 한 두번 명절 때 고모네 집에 모여 2~3일 정도 지내는 것이 전부이다. 자신이 힘들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상담센터 선생님이며, 아는 언니가 가끔 와서 도움을 주곤 한다. 미래에 대해 특별한 계획은 없으며 단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든가 싸우지 않고 잘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다.
사례 5를 통해 가정폭력으로 원가정이 해체되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남긴 상처와 아픔은 원망과 분노의 감정으로 남아 이들을 괴롭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춘기 여아들이 시설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전형적인 어려움 중 하나는 사례 6에서도 나타나듯이 성추행, 성폭력과 관련된 문제이다. 사례 5는 성폭력을 당한 후 시설에서 적절한 관심과 치료를 받지 못하기에 자해 및 자살충동을 느끼는 등 정신과적 문제로 확대되었다. 평생 신경정신과 약물에 의존하고 입⋅퇴원을 반복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례 5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갖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6) 사례 6번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가 이혼을 위해 가출한 동안 사례 6은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으며, 법정에서 이 사실을 증언하게 되면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할 수 있었다. 이혼소송을 통해 친권과 양육권을 빼앗긴 아버지는 이사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살림살이를 다 깨부셨고, 이는 사례 6의 어린 마음에 큰 공포로 다가왔고,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중1과 초5인 두 자녀를 키우기에 너무 힘들었던 어머니는 시설에 두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례 6은 더 이상 아버지가 쫓아올 수 없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시설에 비해 여건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례 6은 입소 후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 사춘기에 시설에서 경험했던 성추행 사건, 학교에서 겪는 따돌림과 편견 등으로 시설생 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남동생은 결국 시설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중간에 퇴소를 했지만, 사례 6은 고3을 졸업하고 퇴소하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대학을 가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두 번의 재수를 거쳐 학자금 대출 을 받아 대학을 가게 된 그녀는 생활비와 등록금 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7년 만에 졸업하였다. 5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현재는 창업하여 개인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례 6은 자녀를 갖지 않고 딩크족으로 산다는 전제하에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시설 출신이라는 것을 남편에게만 알리고 시댁에는 비밀로 하였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다기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무조건 맞추어주며 자신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는 사람이라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결혼할 때 가정생활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가장 컸으며, 자녀를 낳아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생부와는 사례 6이 시설에 입소하면서 연락이 두절되었다. 국민연금공단에서 유족연금을 찾으라고 연락이 와서 그때 생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사례 6은 힘들었던 어린시절과 20대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현재 개인상담 및 치료를 받고 있다.
7) 사례 7번
사례 7은 미혼모시설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양육시설에서 성장하였다. 퇴소할 때 생모가 쓴 아동일지와 양육시설에서 작성한 아동기록카드를 직접 볼 수 있었으며, 생모의 사진도 간직하고 있다. 아동일지에는 감성적인 글들이 많이 적혀있었으며, 이것이 살아가는데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미혼모시설을 통해 생모를 찾을 수 있지만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 다시 생각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생모와 어떠한 교류도 없이 처음부터 단절되어 살아왔기에 원망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 보다는 무덤덤하게 느껴지며, 가끔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사례 7은 시설에서 통행금지, 선배 형들의 내리갈굼 , 시설종사자의 체벌, 진로에 대한 자기선택권 부재, 소외감 등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자랐다. 시설퇴소 후 고시원과 아는 분 집에서 지내다가 현재 LH 임대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돈 관리, 식사를 모두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였다. 시설 선생님과 형식적인 연락은 주고받고 있으나, 고민을 말하기에는 벽이 있다고 한다. 가장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고등학교 상담 선생님이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군 한다.
8) 사례 8번
부모님이 빚 때문에 다툼이 잦았으며 어머니가 가출하면서 이혼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14살의 사례 8을 1년 반 정도 서당에 보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끝내 나오고 말았다. 갈 곳 없이 친구와 방랑하던 중에 교회에 출석하는 시설 국장님의 소개로 양육시설에 입소하게 되었다. 남동생은 할머니 댁에서 살다가 같은 시설에 입소했으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나가게 되면서 연락이 두절되었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방황하고 사고도 많이 치면서 결국 보호치료시설로 전원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폭행, 도벽, 음주, 절도 등 계속 문제를 일으켜 교도소를 반복하여 출입하였다. 시설에서 퇴소 후 10년 동안 부모님과 연락이 끊겼으며, 자연스럽게 가족이 잊혀지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원가족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으며 각자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사례 8은 지금까지 ‘노가다’로 하루 먹고 하루 살아가는 상태이며, 겨울에 일이 없을 때는 교회에 도움을 받아 생활하였으며, 어려울 때는 노숙자로 전락하여 쉼터에 들어가서 잠깐 있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교회 목사님을 알게 되어 그분의 도움으로 현재 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혼자 살고 있으며, 얼마 전에 기초생계수급권자로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직업훈련을 받으면서 국민취 업제도 서비스를 신청하여 새로 출발할 계획이다.
9) 사례 9번
사례 9는 4살 때 누군가에 의해 시설 앞에 맡겨졌으며, 단독으로 호적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 오랜 세월 가족을 찾으려고 방송도 나가고 경찰서도 찾아가고 했으나 기록이나 단서 자체가 전혀 없어서 지금까지 못 찾고 있다. 사례 9가 생활했던 80년대의 양육시설은 인권의식이 부재하였기에 ‘수용소’에 가깝게 느껴졌으며, 하루라도 빨리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례 9는 17살 때 ‘부모님을 꼭 찾는 것과 공부는 계속한다.’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시설을 뛰쳐나왔다. 처음 칫솔공장에서 2년 정도 일하다가 모은 돈을 갖고 서울로 와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였다.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4번 재수를 해서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을 반복하며 7년 만에 졸업하였다. 인권변호사가 꿈이었던 그는 변호사 시험 준비를 했지만 여의치가 않아서 차선으로 노무사자격을 취득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일을 지금까지 줄곧 해오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고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현재 교제 중인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결혼까지 갈지는 불확실하다. 가족도 찾고 싶어서 DNA를 등록해 놓은 상태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을 계획이다.
2. 사례 간 분석
1) 원가족 경험
① 원가족 찾기: 다양한 인식과 모습
연구 참여자들의 원가족 찾기와 관련하여 친부모 찾기에 무관심한 사례, 나중에 언젠가 찾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례, 친부모 찾기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사례 등으로 나타났다. 사례 2는 서류를 통해 입소배경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친부모 찾기에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한편 사례 7은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친부모를 찾을지 다시 고민해 볼 것이라고 했으며, 원가족에 대한 배경정보가 전혀 없는 사례 9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시설과 시청을 수차례 방문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들에게 원가족 찾기는 향후 인생의 과제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아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으나 저에 관한 서류에 ‘어느 날 갑자기 한 시골에 모녀가 나타났고 월세가 밀려서 면사무소에 민원으로 기초수급자가 되었으며 모녀의 담당주사가 모의 심리적 불안정을 보고 정신병원 심리상담을 의뢰, 모는 요양원에 자녀는 시설에 입소되었다’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2)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나랑 같이 들어온 사람들은 세 명이 들어왔는데 걔네들은 다 피부치가 있고 나는 왜 없을까? 그래서 내가 더 자꾸 이렇게 막 돈 조금 모으면 (일) 때려치고 (부모를) 찾으려 다녔어요.” (#4)
“저는 엄마 사진이 있어요. 엄마가 쓴 아동일지와 아동기록카드도 봤어요. 시설에 가면 (생모에 관한 정보가) 있을 건데 지금 찾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안정이 안 되었으니까. 저부터 안정을 시키고 나중에 고민을 해보려고요.” (#7)
“28살 때 커밍아웃 했어요.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 부모님은 뭐 하시냐, 가족형제는 어떻게 되냐? 나는 해당사항이 아무것도 없는 거야.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그때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엄마 찾는 것 때문에 다 오픈하자 생각해서 KBS 아침마당 나가서 부모님 찾는 과정에 나를 알리는 거죠. 방송을 통해 찾는 사람도 있으니까.” (#9)
② 원가족에 대한 감정: 원망, 분노 그리고 용서
연구 참여자들의 원가족에 대한 감정은 원망, 분노, 복수심, 공포, 사랑 받고 싶음, 용서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원가정이 해체되는 과정에 가정폭력과 학대를 경험한 사례 5, 6, 8은 부모에 대한 원망, 분노, 공포의 감정을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갖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폭력과 학대를 경험한 사례 6의 경우, 가해부모에 대해 공포와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며, 오히려 시설이 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원가정으로부터의 부정적인 경험은 생애 초기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이혼소송을 통해 친권과 양육권을 엄마가 가져가니까 아빠가 우리 이사가는 집마다 쫓아다니면서 살림살이 다 부셨어요. 그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공포이고 지금도 사실 그런 트라우마가 조금 있어요. 처음 시설에 갔을 때 저는 안심이 되었어요. 여기서는 더 이상 (아버지가) 쫓아올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6)
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식을 유기한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은 청소년기를 전후로 정점에 달하며,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특히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 있는데 혼자 화성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시설에서 살아야만 했던 사례 9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민단체에서의 사회활동을 통해 이것이 부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부모님을 조금씩 용서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 부모한테 엄마 아빠 그 소리 한번 하고 싶고 정말 나를 이해 해주고, 그 사람한테 사랑받고 싶어요.” (#4)
“(자식을 유기한) 부모를 원망 많이 했죠. 특히 어렸을 때부터는 맞고 하니까 복수심 그런 거 있잖아요. 엄마가 원망스러운데 왜냐하면 남들은 뭐 옷도 사주고 뭐도 사주고 집도 사주고 하소연도 하고 맛있는 반찬도 먹고 하는데, 나는 왜 화성에서 떨어진 사람도 아니고, 그런 부분이 아무래도 청소년 시기에는 엄청 원망을 하죠. 지금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구나 하고 그냥 마음속으로 용서한거죠.” (#9)
③ 원가족과의 관계: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
연구 참여자들은 부모의 이혼, 사망, 빈곤, 유기 등 다양한 이유로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으며, 원가족 과의 관계는 시설입소 배경에 따라 다소 다른 양상으로 보였다. 대체로 원가족과 지속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 지원을 주고받는 경우, 형식적인 가족관계를 갖는 경우, 남이 되어버린 가족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가. 원만한 관계
양육시설 생활 중에 지속적으로 원가족과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했던 연구 참여자들은 퇴소 후 성인이 된 이후에도 원가족과 연락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족관계는 사례 1의 경우 재혼한 친부와 혈연관계가 아닌 계모와도 유지하고 있었으며, 사례 3의 경우 병원에서 생활하는 어머니에게 자발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원가족과의 원만한 관계는 시설퇴소 성인의 자립생활에 지지체계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례 1과 사례 3을 제외하고 본 연구에서 퇴소 후 원가족으로 복귀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경우는 실제로 많지 않을 볼 수 있다.
“시설에 입소한 후에도 아버지와 꾸준히 만났고, 퇴소한 후에도 연락하며, 명절과 연휴마다 갑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새어머니와 꾸준히 연락하고 만납니다.”(#1)
“다른 시설에 있던 공부를 잘했던 친형이 그쪽 시설 폐쇄로 제가 있던 시설로 오면서 공부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형은 명문대학에 진학했는데, 사기 사건에 연루되면서 지금 연락이 안 되고, 결혼한 누나와는 연락이 되요. 어머니는 수급권자이고, 현재 병원에 입원해 계신데, 간식 같은 필요한 비용을 저와 누나가 부담하고 있어요.” (#3)
나. 형식적인 관계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시설에서 생활한 연구 참여자들에게 일반적인 가족관계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부모-자녀 간의 깊은 신뢰와 애틋한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며 명절이나 경조사가 있을 때 가끔 만나는 형식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사례 6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부모와는 서로 어색하기만 하고 먼 6촌 만나는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사례 5는 부모가 재혼을 하고 각자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면서 원가족과의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
“엄마, 아빠가 있다고 해서 저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가정의 친구들처럼 막 이렇게 하고 그러지 못해요. 내가 엄마 아빠랑 매일매일 지내야지 보고 싶고 그립고 막 이런 감정들이 있잖아요. 부모님들도 나를 어색해하고 나도 부모가 어색하고. 제 주변에 부모가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친구들은 아무도 없어요. 이혼 혹은 재혼을 했거나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이런 부모들도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의 공유가 전혀 없으니까 1년에 딸랑 두 번 먼 6촌 만나는 느낌이겠죠.” (#6)
“(아빠와 오빠랑은) 1년에 두 번씩 봐요. 명절에 다 같이 모일 때 만나요. 오빠는 제가 연락처를 알아내면 되게 싫어해서 번호를 자주 바꾸더라고요. 친언니랑은 부모님이 연락처를 안 알려줘서 거의 연락을 못해봤어요.” (#5)
다. 남보다 못한 관계
친부모, 형제자매와 연락을 갖는 사례 중에는 원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점점 소원해지다가 연락 두절 된 사례들도 있었다. 사례 8은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시설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원망을 많이 했지만, 갈수록 이러한 감정도 무뎌지고 자연스럽게 가족이 잊혀지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오랜 이별 끝에 가족은 이미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시설 나오고 10년 동안도 연락 별로 크게 안 했어요.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이게 자연스럽게 잊어져요. 그냥 잊어지는데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부여잡는다고 해서 가족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터진 거 각자 살자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8)
2) 이성교제와 결혼생활
① 원가족 경험과 이성교제의 연속성
먼저 연구 참여자들은 이성교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일반가정에서 자란 상대와 교제 할 때 더욱 그러하였다. 일반가정에 대해 잘 모르고, 상대방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성교제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시설 출신끼리 사귀는 것에 대해 서로 상반된 의견이 갖고 있었는데, 찬성하는 이유는 서로 성장배경이 비슷하고 처지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이를 반대하는 사례 6은 빈익빈의 논리에 따라 시설출신 친구와 사귀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한편 사례 9는 ‘고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상대가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짝사랑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보육원 출신들끼리 사귀는 경우가 많아요. 별로 싸울 일이 없으니까 1~2년 정도 가는 편이에요. 근데 일반가정에서 자란 여자친구와는 관계를 오래 지속 못해요. 왜냐하면 일반가정에 대해 모르고, 그쪽 부모님 만나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이러다 보니까 연애를 오래 못하고 고질적인 것 같아요.” (#7)
“사실 저는 솔직히 반대해요. 어릴 때는 보육원 출신 친구들끼리 사귀는 것 정말 미친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봐요. 왜냐하면 서로간의 아픔이나 성장과정을 알기 때문이죠. 근데 저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꺼에요.” (#6)
“짝사랑은 많이 해봤는데 아직 연애를 거의 못해봤어요. 고아라는 얘기가 나오는 순간 다 좀 부담스워하세요. 결혼 생각은 있죠. 현재 교제하고 있는 짝꿍은 있어요. 근데 모르죠. 내일 일은 모르기 때문에...” (#9)
반면에 아직 결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이성교제에 대해 큰 어려움은 없다 는 사례도 있었으며, 이 사례들은 원가족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온 사례들이다.
“저 남자친구 있어요. 그냥 서로 잘 맞아서..... 아직 결혼은 생각할 나이는 아니고요” (#1)
“(당사자) 단체에서 만난 (여자)동생이 자주 연락하는데.... 아직 여자 친구를 사귈 상황은 아니에요. 그래도 그 동생에게 필요한 것들은 도와주고 있어요.”(#3)
② 결혼의 도구적 동기
연구 참여자들은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도구적 동기를 갖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상대를 선택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례 2는 사귀고 있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사례 4는 돈이 필요해서, 사례 6은 자신에게 무조건 맞추어주고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일 것 같아서 결혼을 결심하였다. 특히 사례 2는 남편의 소득이 높지 않아서 결혼 후에도 정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하여 혼인신고를 미루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자녀 출산 후에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려서 미혼모로서 정부지원도 받았다.
“사랑하지는 않았어요. 그 남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거가 제일 컸죠. 저는 결혼 자체를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내가 보육원생인 거 알고 있고, 시어머니도 그냥 오케이 하시고 괜찮아요. 그럼 내가 이 기회가 또 다시 올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 아예 혼인신고를 안 했어요. 원래 갖고 있던 수급권을 혼인 신고하면서 없애기가 좀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혼인신고를 좀 미루자 했는데, 이게 아이가 생기니까 기저귀 값 그리고 분유 값 이런 게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수급권 유지하고, 아이를 제 호적에 올려서 서류상 미혼모가 되었어요. (#2)
“결혼한 적은 없어요. 아 위장 결혼을 했었어요. 돈이 필요해서.... 그 여자가 이제 돈을 써 갖고 결혼하고, 협의이혼해서 서류는 깨끗하거든요. 결혼하고 한 달 정도 동거했죠. 왜냐하면 출입국 관리소에서 나오니까. 5년 후에 이혼 했죠. (#4)
“연애할 때 남편이 일단 돈이 좀 있었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남자랑 결혼할 것이라는 것이 명확했어요. 제가 안정적인 상황에서 생활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편은 반드시 무조건적으로 나한테 맞추 어줄 수 있는 사람, 나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는 사람, 이런 조건들이 있었어요.” (#6)
③ 낯설고 서툰 가족관계
연구 참여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리불안, 우울증, 애정결핍 등으로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이는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배우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애정과 교감을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서툴기 때문에 결혼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고 자신이 없다고 하였다. 사례 9는 부모로부터 버리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상대가 언젠가 자신을 떠날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으며, 사례 6은 남편한테 책 잡힐까봐 평시에 시설 얘기를 절대 꺼내지 않으며, 시댁 어른들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결혼하였다.
“결혼할 때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과연 가정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가 가장 컸어요. 사실 지금도 그런 것이 있어요. 아직도 애정결핍 증상 같은 것이 좀 있는데, 많은 것들이 저에게 해당되는 것이 맞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제가 정도 많고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무서워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을 마음속에 담는 것에 대해 무서워하는 거죠. ... 남편한테 책 잡힐까봐 보육원 얘기하고 싶지 않고 시어른들도 당연히 몰라요.” (#6)
“나는 버려졌다.... 가족을 못 만나니까 분리불안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이 언젠가 나를 떠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렸을 때 엄마가 나를 버리고 떠난 경험이 있잖아요.” (#9)
양육시설에서 자란 연구 참여자들은 가족 구성원 간의 호칭과 위계질서에 대해 생소할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를 다루는데 서툴고, 가족만이 갖는 특유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처음부 터 원가족과 단절되어 교류가 없는 사례 9는 사람들이 가족에 느끼는 친근감과 애틋함을 이해하거나 갖는 것이 힘들다고 고백하였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해 본 경험도 없고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 아빠를 불러본 적이 없기에 이러한 감정들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가족이 느끼는 그런 경험이 없고, 그런 감정을 갖는 게 조금 힘들죠. 이해하기도 힘들고.” (#7)
“왜냐하면 가족의 형태로 살아왔던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만나면 제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으니까. 삼촌이나 되게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어떤 친근감 같은 게 좀 생소하게 느껴지는 거죠.” (#9)
3) 자녀 출산⋅양육과 부모역할
① 출산⋅양육에 대한 두려움
본 연구에서 결혼을 한 연구 참여자들은 자녀를 출산과 양육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으며,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고 응답한 사례들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혼 전부터 남편과 딩크족으로 살 것에 대해 미리 약속을 한 상태였으며, 자녀를 갖지 않는 것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답하였다. 그 이유는 자신이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에 자녀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애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저는 애를 키울 자신이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정확히 저희는 경제적으로 그렇게 힘든 형편은 아니거든요. 근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주는 방법도 잘 모르겠고 ‘내가 과연 제대로 된 엄마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굉장히 커요.” (#6)
② 부모역할에 대한 부담감
연구 참여자들은 실제로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 자녀에게 사랑을 주는 부분이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하였다.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자녀와 교감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 심지어 일부 시설 출신 주위 친구들은 아이를 낳고 많이 후회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녀를 낳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하였다. 사례 2의 경우 자녀 양육에 대한 인식도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구체적으로 자녀는 부모가 반드시 양육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자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제 아이지만 사랑을 주는 부분이 저는 많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분명히 내가 노력은 하지만 노력하는 거와 진짜 사랑하는 건 다르잖아요. 그리고 저는 사랑이라는 걸 애초에 잘 모르던 사람이라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인지,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2)
“주위 (보육원 출신) 여자 친구들도 아이를 낳고 사실 후회를 많이 했어요. 저한테 아기를 안 낳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아이와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 모르겠대요.” (#6)
“육아가 부모가 꼭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보고 싶을 때 만나고, 아이가 원하는 걸 해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저를 키운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는 부모가 안 키운 애들을 많이 봤잖아요. 결국은 부모를 찾아가게 돼 있잖아요. 자라온 환경도 물론 중요하지만 굳이 아이가 내 손에서 커야된다는 생각은 없었고요. 엄마가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아이가 요구 사항이 있었을 때, 그거에 대응을 해주는거가 저는 그게 육아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2)
Ⅴ. 논의 및 결론
본 연구는 양육시설에서 퇴소한 성인들의 가족 및 결혼생활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탐색함으로써 이들의 원가족과 새로운 가족 형성 및 유지와 관련하여 필요한 지원과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대에서 50대 양육시설퇴소 성인 9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원가족 경험, 이성교제와 결혼 및 자녀양육 경험에 대해 심층면접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질적 사례분석 을 실시하였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본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양육시설 퇴소 후 원가족 찾기에 대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친부모 찾기에 무관심한 사례, 나중에 언젠가 찾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례, 친부모 찾기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사례로 구분되었다. 대체로 서류를 통해 입소배경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시설에 보관된 가족사진이나 아동일지, 아동기록카드 등 서류를 통해 원가족과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우 친부모 찾기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원가족 찾기를 서두르지 않고 미루는 반면, 자신의 가족배경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경우 가족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연구 참여자들의 원가정에 대한 감정은 자식을 유기 또는 학대한 부모에 대한 공포, 원망, 분노, 복수심 등 감정과 함께 다른 아이들과 같이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수정 등(2017)는 이러한 원가족과의 관계를 ‘애증의 외줄타기’라고 기술하였으며, 신혜숙(2017)은 아동양육시설 생활경험자들이 자신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부모가 미우면서도 그리워 하는 양가감정을 느낀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사회생활을 통해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고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만만하지 않은 일임을 깨닫고 부모를 용서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버린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 연구 참여자들의 원가족과의 관계는 원만한 관계, 형식적인 관계, 남보다 못한 관계로 분류되었다. 시설생활 중에도 지속적으로 원가족과 연락하고 관계를 유지했던 연구 참여자들은 퇴소 후 성인이 된 이후에도 원가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김수정 등(2017)의 연구에서 원가족이라고 분명히 인식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린시절 부모와 함께 생활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대부분의 연구 참여자에게 원가족은 어색하고 서먹서먹하며 먼 친척같은 형식적인 관계에 불과하며, 김수정 등(2017)의 연구에서 원가족과 타인의 경계가 불명확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원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점점 소원해지다가 아예 연락 두절인 상태도 있었는데,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족이 잊혀지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선행연구에서 타인을 원가족이라고 생각하거나 원가족을 완전히 잊고 싶어하는 경우와 일치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양육시설 퇴소 성인들의 이성교제와 결혼생활을 살펴보면, 이성교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일반가정에서 자란 상대와 교제할 때 더욱 그러하였으며, 일부는 시설 출신끼리 사귀기도 하였는데, 이는 서로 성장배경이 비슷하고 처지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또한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도구적 동기를 갖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상대를 선택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이성교제에 대해 큰 어려움이 없다는 사례도 있었으며, 이 사례들은 원가족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결혼생활에서 일부 연구참여자들은 배우자와 애정과 교감을 나누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하였으며, 가족에 느끼는 친근감과 애틋함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고 고백하였다. 선행연구에서도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하거나 결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권지성, 2007), 자신이 시설출신이라는 이유로 상대와 결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보고한바 있다(권지성⋅정선욱 2009). 반대로 이성교제와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자친구로 인해 사랑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사람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기술한 선행연구도 찾아볼 수 있었다(김수정 외, 2017).
셋째, 결혼을 한 연구 참여자들의 상당수는 출산⋅양육에 대한 두려움과 부모역할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에 자녀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실제로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 자녀에게 사랑을 주는 부분이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하였는데,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 뿐 만 아니라 어떻게 자녀와 교감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황수연(2017)의 연구에서 부모의 부정행위, 일탈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도 자녀를 시설에 보낼 수 있다는 불안감,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모델링이 없었기에 어떠한 부모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충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아이가 느낄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출산한 후 모성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수용하며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결과도 발견할 수 있었다.
위 연구결과를 토대로 양육시설 퇴소 성인을 지원하기 위한 실천적⋅정책적 제언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육시설 퇴소 성인들의 상당수는 원가족에 대한 감정이 부정적이었으며, 심지어 일부는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설퇴소 후 이들의 원가족과의 관계는 소원하거나 단절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자립과정에 도움을 받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개별아동의 배경적 특성에 따라 원가족과의 관계 회복과 유지를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 퇴소 이후 사회에서 타인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대인관계형성 프로그램 등을 자립준비과정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양육시설아동을 대상으로 가정체험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양육시설 퇴소 성인들의 다수는 결혼생활에 자신이 없고 부모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애정과 교감을 나누는 방식에 있어서도 서툴러서 결혼생활 자체가 상당히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결혼과 가족의 의미 및 자녀양육 관도 일반가정 부모들과 다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유년기 가정생활 경험의 부재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양육시설아동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해 지역사회 내 사전교육을 이수한 일반 가정에 정기적으로 초대하여 일상을 공유하고, 심리⋅정서⋅사회적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가정체험 프로그램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양육시설을 퇴소한 성인을 위한 자조모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일반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시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유년기 양육시설 보호 경험은 시설퇴소 성인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서로의 삶을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자조집단 모임을 지역별⋅연령별로 자발적으로 활성화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자조모임을 통해 자립뿐만 아니라 삶의 여정에 직면하게 될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회적 자원에 관한 정보를 교환 하며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을 서로 공감해 줄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지원책들은 모두 자립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자조집단들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넷째, 일반 시민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전문교재와 강의안을 개발하고 전문가와 보호 종료성인을 강사로 양성하여 시설보호아동 및 시설퇴소 성인에 대한 이해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교육 및 복지현장에서 보호아동의 담임교사와 상담교사를 대상으로 보호아동이해 교육이 필요하며, 아동보호전문공무원, 아동보호전담기관의 종사자, 시설보호로 아동의 보호방법을 결정하는 현장 전문가들도 보호아동에 대한 이해교육을 받아야 한다.